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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초서
Jul. 10, 2021, 12:04 pm.

By Jaekwon Han

Jaekwon Han leads Front-end team at 29CM and has worked as a Front-end developer and an UI designer.

태초에 목소리가 있었다

또 내가 생각하는 여성운동은 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넘어, 남성이 '사적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p.50)
내가 생각하는 여성주의는 5천 년 이상 계속되어 온 남성 사회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주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지향한다. ...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파괴하는 것은 가부장제지, 여성의 '직설적인' 목소리가 아니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다. (p.52)

어머니는 말할 수 있을까

여성이 자궁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면 성대가 있는 사람은 모두 오페라 가수가 되어야 하는가? 성대를 가진 사람이 가수가 되는 것은 선택과 노력의 결과이듯이, 어머니가 되는 것 역시 개별 여성들의 선택에 따른 문제이다. ... 여성은 어머니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남성 임금의 절반을 받고, 남성은 아버지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여성보다 더 많이 받는다. (p.58)
어머니의 지위가 높은 사회일수록 여성의 지위는 낮다. 어머니는 아들의 대리인이다. ... 어머니의 권력은 결국 출세한 아들의 권력에서 나온다. 어머니의 행복한 삶은 잘난 아들을 통해서 보장된다. 그런 어머니가 남녀고용평등법을 찬성할 리 없다. ... 그래서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는 결국 젠더 문제다. 여성의 자아 실현과 인생의 성공은 자녀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한국의 사회적 합의다. 어머니가 자녀 교육에 '목숨을 걸고', 과외비 마련을 위해 '파출부', 주부 매춘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p.70)
'탈특권화된' 아줌마와 '특권화된' 어머니의 차이는 무엇일까. 결혼한 여성이 자신의 성역할에 충실하며 집에만 머무를 때, 어머니가 직장 생활을 하지 않을 때 그녀는 나의 어머니다. 하지만 그녀가 욕망을 드러내며 집 밖으로 나올 때, 남의 어머니일 때 그녀는 아줌마다. ... 여성은 평생토록 서비스를 하는 주체이지 받는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p.71)

가정폭력의 정치학

장애인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정상이라고 간주되는 몸의 기준에 대한 도전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운동은 사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사회, 역사, 정치를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의 문제는 기존의 공적 영역 중심의 협소한 정치 개념을 바꾸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이제까지 여성은 역사 밖에, 여성 문제는 정치 밖에 존재했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등 기존의 정치 전선 자체가 남성의 관심사에 의해 설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p.141)

성매매를 둘러싼 '차이'의 정치학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를 여성의 몸, 성에 대한 남성의 통제와 지배의 권리 체제로 정의한다. 이들은 성매매를 남성의 돈과 여성의 몸이라는 '평등한' '자유로운' 교환이 아니라 성 착취라고 보며, 사랑, 성폭력, 성매매를 연속선으로 파악한다. (p.227)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은 '창녀'가 아니라 포주다. 이는 성판매 여성이 성을 파는 것이 아니라 팔리는 상품이라는 의미이다. 즉, 성매매는 여성이 남성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남성에게 파는 것이다. (p.228)
타자성의 문제에 천착하여 <제 2의 성>을 쓴 시몬 드 보부아르는 성판매 여성을 그 사회의 성적 관습에 도전하는 여성으로 본다. 성판매 여성은 타자, 대상, 착취당하는 여성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아, 주체, 착취자라는 것이다. ... 남성 욕망의 대상으로서 여성은 남성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p.229)

군사주의와 남성성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는, '신사', '생계 부양자'라는 전통적인 남성의 성역할을 하지 않으면서도(할 수 없으면서도), 남성의 권위를 강조하고 폭력을 자원으로 삼는 이른바 '제3세계 식민지 초남성성(hyper-masculinity)의 주요 요소이다. (p.243)
군 가산제 논쟁 때마다 등장하는 남성 논리인 "여자들이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한다."라는 비난이 있는데, 근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무와 권리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일정한 자격을 갖출 경우, 국가는 개인을 '국민', '시민'으로 인정하고, 국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갖는다. 의무는, 수행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수는 있어도, 이행했다고 해서 보상받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p.247)
군사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싸워야 할 적, 지키는 주체, 보호의 대상이 있어야 한다. 가부장제 사회의 '보호자 남성, 피보호자 여성'이라는 전형적 성역할은, 이 세 가지 요소의 모델이 된다. ... 적과 피보호자를 상정하는 군대가 존재하는 이상, 여성이 군 복무에 남성과 평등하게 참여한다고 해서 시민권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 평등의 기준 자체가 남성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때 평등은 공정함을 추구하는 정의가 아니라, 남성과의 같음을 강요하는 남성 동일화이다. 때문에 여성의 '평등한' 군대 참여는, 역사상 어느 국민국가에서도 채택된 적이 없고, 어떤 여성해방 이론에서도 주장된 일이 없다. (p.250)